“의대 쏠림, 실패 두려워 생겨난 현상”...대한민국 수재들에게 ‘실패’ 경험하라는 ‘이 남자’

이진한 기자([email protected])

입력 : 2024.12.03 15:48:23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장
망한 과제 자랑대회 반응 폭발
퇴짜·불합격 등 경험 공유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힘 얻어


2021년 설립한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학내 구성원들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과감한 도전 정신으로 함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조직이다. ‘실패지식’을 체계화·자산화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사회의 인식 변화를 위한 콘텐츠도 기획하고 있다.

올해로 두 번째 진행한 ‘카이스트 실패학회’가 대표적이다. 학회는 학생들의 실패에 대한 인식 전환과 도전·혁신 정신 장려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학회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반응은 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뜨겁다”며 “행사가 전하는 메시지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개인의 사고방식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대 쏠림부터 저출생 문제까지....실패할까 두려워 생겨난 현상들
조성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소장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이번 학회는 지난 8일부터 20일까지 ‘거절’을 주제로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 본원에서 사진전과 박람회 형식으로 열렸다. 지난해 호평을 받았던 ‘망한 과제 자랑대회’는 부스 박람회로 운영했다. 실패에 대한 아이템이나 영상 등을 통해 자신들의 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색 수상 부문도 만들었다. ‘내 마음의 치명상’(공감과 동정심을 유발한 팀)과 ‘당신은 상상 그 이상’(가장 흥미롭게 실패를 풀어낸 팀), ‘화려한 비상’(실패했지만 장래가 유망하고 성공을 응원하고 싶은 팀), ‘최상’ (청중 투표 4개 문항 합이 최다인 팀), ‘어딜 보시는 거죠. 그건 제 잔상’(실패를 빠르게 극복해 회복탄력성이 뛰어난 팀) 등이다.

올해는 ‘과제 총 219일 밀린 썰 푼다’라는 이야기로 허도영 전자 및 전자공학부 학생이 ‘최상’을, ‘의대 정원이 이공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려다 의료계 파업으로 정량 지표 개발에 실패한 전준형 전산학부 학생이 ‘내 마음의 치명상’을 받았다. 또 강유환 새내기과정학부 학사과정 학생이 ‘화려한 비상’, 김세헌 전기 및 전자공학부 학사과정 학생이 ‘당신은 상상 그 이상’, 알리 쉐라즈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학생이 ‘어딜 보시는 거죠 그건 제 잔상’을 받았다.

제2회 카이스트 실패학회 상설 전시 <이진한 기자>


학회 기간 열렸던 상설 전시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퇴짜맞고 불합격했던 경험을 담은 사진들로 구성했다. ‘실패 포토 보이스: 거절 수거함’ 캠페인을 통해 수집한 반려·불합격 인증 사진을 콜라주 형태의 작품으로 제작했다. 또 에세이 공모전으로 선정된 실패·극복 사연 중 귀감이 될 만한 문장은 오가면서 읽을 수 있도록 배치했다.

학과 수업에서 도전정신을 펼칠 수 있도록 일부 과목과도 연계했다. 학부생이 대학원생처럼 연구실에서 실제 연구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학부생 연구참여 프로그램(URP)’이 해당한다. 조 소장은 “URP 참여 학생들이 실패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건 당연한 것인데도 항상 성공한 것처럼 보고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학생들이 서로 헤매고 실패하는 모습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서 실패에 대한 공포를 낮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확실한 동기·목적의식 있어야 실패 반복해도 계속 도전 가능
지난달 대전 카이스트 본원에서 열린 제2회 카이스트 실패학회에서 재학생들이 실패를 주제로 한 대국민 설문 조사 결과를 보고 있다. <이진한 기자>


실패연구소 설립 3주년을 맞아 실시한 ‘도전과 실패에 대한 대국민 인식조사’를 통해서는 한국 사회의 실패에 대한 모순적인 인식을 담았다. 응답자의 70% 이상이 ‘실패가 성공에 도움이 된다’, ‘실패의 경험은 공개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한번 실패하면 낙오자로 인식된다’는 질문에는 60% 가량이 ‘그렇다’고 답하며 개인과 사회간 괴리를 보였다.

한국 사회의 실패에 대한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인의 동기부여를 높여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확고한 목적의식으로 회복 탄력성을 높여야 실패가 반복되더라도 계속 도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한 학교와 가정의 역할도 강조했다. 학생들이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을 갖게 된 배경에 교사와 부모가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조 소장은 “실패 에세이 같은 행사를 통해 경향성을 살펴보면 한국 학생보다 외국 학생들이 더 적극적”이라며 “한국의 위상이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패를 수용하는 문화는 꼭 필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외부에 그 동안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까닭이다. 조 소장은 “다른 대학은 물론 전문 연구기관에서도 실패연구소의 운영 성과를 물어 온다”며 “그때마다 한국 사회가 변화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도록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안정적인 진로 선택과 편리한 인간관계 형성만을 추구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며 “이 같은 문화가 바뀐다면 의대 쏠림 현상을 비롯해 저출생 같은 사회적 문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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